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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강원도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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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 . . . 122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북한의 행정구역, rd1=강원도(북한))]
         [include(틀:강원도의 기초자치단체)]
         ||<-3><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bordercolor=#ff9e00><tablebgcolor=#FFFFFF><bgcolor=#ff9e00> {{{+1 {{{#FFFFFF '''강원도'''}}}}}} [br] {{{#FFFFFF '''江原道 / Gangwon-do'''}}} ||
         ||<-3><bgcolor=#ff9e00>[include(틀:지도, 장소=강원도,너비=100%, 높이=100%)] ||
         ||<-2><bgcolor=#00A885> {{{#FFFFFF '''도청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1 ||
         ||<-2><bgcolor=#00A885> [[강원도지사|{{{#FFFFFF '''도지사'''}}}]] || [[최문순]] ([[더불어민주당|{{{#1870B9 '''더불어민주당'''}}}]])[br],,,3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3><-2><bgcolor=#00A885> '''[[강원도의회|{{{#FFFFFF 도의회}}}]]''' ||
         ||<-2><bgcolor=#00529B> {{{#FFFFFF '''링크'''}}} ||<bgcolor=#FFFFFF>[[http://www.provin.gangwon.kr/|[[파일:Gangwondo-mini.png|width=18px]] {{{#000000 강원도청 홈페이지}}}]] [br] [[http://blog.naver.com/gwdoraeyo/| [[파일:external/static.naver.net/Blog_128.png|width=15]] {{{#000000 강원도 공식 블로그}}}]] [br] [[https://twitter.com/happygangwon| [[파일:트위터 아이콘.png|width=15]] {{{#000000 강원도 공식 트위터}}}]] [br] [[https://www.facebook.com/gwdoraeyo|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width=15]] {{{#000000 강원도 공식 페이스북}}}]] ||
         강원도의 휘장.
         강원도의 [[마스코트]]인 반비는 [[반달가슴곰]]이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강원도로 넘어가다 보면 곰 석상이 선 것을 볼 수 있다.[* 미시령요금소 표지판 옆에도 붙어 있다.]
         [[강원도청]].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1(舊 봉의동 15번지)에 있다.
         >아침 해 먼저 받은 우리 강원도
         >-강원도 도가(道歌)
         실질적으론 휴전선 이남만 관리하고 있지만 법률상으론 휴전선 이북에도 강원도의 행정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알다시피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북부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경기도]]와 더불어 남북으로 분단된 도 2개 중 하나다.[* 서해 5도가 과거 황해도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인천광역시 소속이라 [[황해도]]는 사실상 북한 땅이다. 때문에 황해도는 분단된 도로 보지 않는다.] 참고로 [[북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북한)|강원도]]가 유일하게 분단된 도다. 북한은 휴전선 이북의 경기도 지역을 [[황해북도]]나 강원도로 흡수해 버려서 북한의 행정구역상 휴전선 이북 지역에는 경기도에 속하는 지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일:강원도 지도.png]]
         강원도 지도
         원삼국시대에는 [[동예]], [[말갈]]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의 영토였다. [[통일신라]] 때는 [[9주 5소경]] 중 영서는 [[삭주]], 영동은 [[명주]]였다. 명주의 중심도시는 [[강릉시]]로 본래 고대부터 [[영동]]지역의 거점 중 하나였고, [[원주시]]와 [[춘천시]]는 [[영서]]지역의 거점 중 하나였다. [[통일신라]] 당시 [[9주 5소경]] 중 강원도는 [[명주]]에 속했는데 당시 명주 자체가 강릉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1995년 [[도농통합시]] 이전에 명주군이 있었는데, 원래 명주자체가 강릉과 하나였던 셈이다.] 이는 춘천도 마찬가지인데 춘천은 [[삭주]]에 속했으며 이는 춘천을 부르는 지명이었다. 당연히 명주의 주(州) 치소(도청)는 강릉에 있었고, 삭주의 주 치소는 춘천에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원주의 경우는 북원경으로 불렸고 이는 현재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5소경 중 하나였다. 다만 이때의 5소경 역시 9주에 속했던지라 북원경 역시 삭주에 속했다.
         [[고려시대]] 초기 [[10도]]에선 삭방도(朔方道)로 영동과 영서지역이 모두 포함된 적이 있었으나, [[현종(고려)|현종]] 때 [[5도 양계]]에서 다시 영동은 [[동계]] 영서는 [[교주도]]로 분리되었다. 동계의 병마사 치소는 당시 안변도호부[* 현재 강원도(북한) [[안변]]군]에 있었으며 교주도의 안찰사 치소는 교주[* 현재 강원도(북한) [[회양]]군]에 있었다. 그러나 강릉과 춘천 모두 영서와 영동지역의 거점의 지위를 계속이어가, 강릉의 경우엔 동계의 치소로 옮겨지고 고려 말기엔 '''강릉도'''로 개편되었다. 춘천의 경우에도 교주도의 치소로 옮겨졌고, 교주도를 당시 춘천의 지명이었던 춘주에서 딴 '''춘주도'''라고도 불렀다. 사실 교주도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기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고 그 명칭은 춘주도, 동주도, 회양도 등으로 계속 바뀌었는데 한국사 교과서의 지도 등에는 대표적으로 교주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원주의 경우는 동계도 교주도도 아닌 [[충주]]와 [[충청도|양광도]]에 속했다.
         [[고려]] 말에는 영동과 영서지역이 교주강릉도로 합쳐졌고, 지금의 [[함경남도]] 일부분에 해당하는 동북면도 포함되었다. [[조선시대]]부터는 [[충청도]]에 있던 원주, [[평창]] 등이 포함되었으며, 영서지역의 치소를 춘천에서 원주로 옮기고 도명을 강릉의 '''강''', 원주의 '''원'''에서 따 [[8도]]제 중 하나인 강원도로 바꾸었다. 허나 [[태백산맥|지리적 이유]] 로 인해 강원도 내에서 명목상 좌우도제로 영서는 강원우도, 영동은 강원좌도로 나뉘었다.[* 현 강릉에 병무청이라든지, 경찰청 등 도청이 위치한 춘천 못지 않게 강릉이 영동 지역의 거점을 계속담당했다. 지금도 영서 지역과 영동 지역의 시스템을 이원화하는게 효율적인데, 교통이 극악이었던 조선 시대는 당연했을 것이다. 통일신라와 고려 대부분 시기, [[23부제]]를 고려하면 영서와 영동지역을 조선시대에 합쳐선 안 되었다는 중론이 나온다.] 이때부터 강원도의 관찰사 감영이 원주로 옮겨졌다. 그러나 1895년 전국 행정구역을 [[23부제]] 337군으로 정비할 때 강원도를 폐하고 2부(춘천부, 강릉부)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충주부에 속해있는 군이 되었고, 1896년 다시 23부를 폐지하고 전국을 13도로 분할했을 때 감영이 있던 원주를 제치고 다시 춘천에 감영를 두게 되었다.
         [[도청(행정)|도청]]이 춘천으로 다시 오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춘천이 구한말에는 영서 지역 중 가장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발생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대한제국)|고종]]은 국가 변란 등 유사시에 대비한 피난처를 물색하였다. 이에 여러 지역이 최적지로 오르내렸는데, 그 중에서 춘천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이에 따라 수도 한양의 동쪽 봉의산 자락에 위치한 춘천유수부 관아에 춘천이궁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춘천이궁은 1888년(고종 25) 초대 춘천유수 김기석이 공사를 시작하여 1890년(고종 27) 2대 춘천유수 민두호가 완공하였다. 완공 후 고종이 실제로 이곳에 행차한 적은 없었지만, 이궁이 춘천에 위치함으로써 원주에 있던 강원감영이 폐쇄되고 1896년에 춘천이 강원도의 수부(首府)가 되어 오늘날과 같이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김보름 . . . . 30회 일치
         | 소속팀 = 강원도
         [[대구광역시]] 출신이다. [[대구문성초등학교|문성초등학교]], [[성화중학교]], [[정화여자고등학교]]를 거치며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0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여 장거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이후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강원도청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11년 시즌부터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로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으며, [[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주목받았다. 2011-12 시즌에도 다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으며,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서 종합 3위에 올랐고, 팀추월에서는 우승하였다.
         * 강원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참여홍보대사<ref>{{뉴스 인용|url=http://www.gw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81996|제목=강원도, '2018평창올림픽 참여홍보대' 위촉 - 강원신문|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2013년 10월 2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20)은 4분18초89로 결승선을 통과해 1위에 올랐다. 박도영(20-한국체대)이 4분21초30으로 2위에, 노선영(24-강원도청)이 4분21초37로 3위에 등극했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1023_0012457099&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5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2초44의 대회신기록으로 노선영(강원도청-2분02초77)을 제치고 우승했다. 5000m에서도 김보름은 이주연이 2008년 남긴 기존 대회기록(7분46초20)에 7초가량 앞선 7분39초14로 우승, 3광왕의 영예를 안았다. 여자 1500m 및 3000m에서는 팀추월 우선선발 대상자인 김보름과 노선영, 박도영(한국체대) 외에 양신영(전북도청), 전예진(한국체대)이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ref name=":11">{{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0/25/20131025004859.html|제목=[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성=세계일보|날짜=2013-10-25|뉴스=[종별빙속] 모태범·이승훈 나란히 2관왕…김보름 3관왕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013년 11월 8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7초93의 기록으로 12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13090996|제목=‘빙속 여제’ 이상화, 캘거리 월드컵 500m 금메달|날짜=2013-11-09|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9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94 만에 결승선을 통과, 20명의 선수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ref>{{웹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sports/2013/11/10/1007000000AKR20131110013951007.HTML|제목=-빙속월드컵- '여제' 이상화 500m 세계신기록(종합) {{!}} 연합뉴스|확인날짜=2017-03-13}}</ref> 10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양신영이 3분00초32로 5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15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4초62로 15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6초12로 개인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17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8초32로 7위를 차지했다. 2013년 11월 29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09초99로 6위를 차지했다. 30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8초12로 1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3년 12월 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추월에 김보름은 노선영(24-강원도청), 양신영(23-전라북도청)과 함께 출전해 3분02초04의 기록으로 네덜란드(2분58초19), 폴란드(3분1초18)에 이어 3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493417|제목=전북도청 양신영 국제빙상 월드컵 동메달 - 전북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2월 9일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서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3000m 부문에서 김보름(21)은 4분12초08의 기록으로로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조로 경기를 치른 김보름은 21초05로 200m 구간을 통과한 후 2분31초34로 1800m 구간을 지났다. 이후 2200m 구간 통과 순간부터 스피드를 올리며 후반 들어 스퍼트를 올렸고, 결국 하위권이 아닌 중위권 기록을 남겼다. 김보름의 순위인 13위는 지난 2006 토리노 올림픽, 2010 밴쿠버 올림픽 당시 노선영(25-강원도청)이 기록한 19위를 넘어 한국 여자 3000m 부문의 가장 높은 순위다. 5조의 노선영은 4분19초02를 기록했다. 노선영은 200m 구간에서 21초32의 기록으로 지난 이후 속도를 올리지 못한 채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노선영은 전체 26위의 성적을 남기며 경기를 마쳤다. 6조에서 경기를 소화한 양신영(24-전북도청)은 4분23초67을 기록해 이날 대회를 뛴 28명 중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 이날 대회는 4분00초34의 이레네 부스트(네덜란드)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다시 가져갔다. 대회 2연패를 노린 2위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4분01초95)와 3위 올가 그라프(러시아-4분03초47)에 앞선 기록이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441654|제목=(소치올림픽)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13위..금메달 부스트|확인날짜=2017-03-21}}</ref> 16일 열린 1500m에서는 네덜란드의 요리엔 테르모르스가 1분53초51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은메달과 동메달도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쓸었다. 은메달은 이레인 뷔스트(1분54초09)에게 돌아갔고 동메달은 하를로터 판바이크(1분54초54)가 주인이 됐다. 심지어 4위도 네덜란드 선수인 마리트 리엔스트라(1분56초40)가 차지했다. 김보름은 1분59초78로 21위에 올랐다. 노선영(25-강원도청)은 2분01초07로 29위, 양신영(24-전북도청)은 2분04초13으로 최하위인 36위에 그쳤다.<ref>{{웹 인용|url=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SCD=EB33&newsid=01079126605991504&DCD=A20402|제목=[소치올림픽]테르모르스, 전날 쇼트트랙 뛰고 빙속1500m 올림픽新 금|성=포털|이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성2=무단전재|이름2=‘이데일리 스타in’-|날짜=2014-02-17|확인날짜=2017-03-21|성3=금지|이름3=재배포}}</ref> 김보름은 무릎 통증이 있어 5000m를 기권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2/19/20140219004640.html|제목=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성=세계일보|날짜=2014-02-19|뉴스=빙속 김보름, 女 5000m 기권…팀추월 집중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닷컴 -|확인날짜=2017-03-13}}</ref> 22일 열린 팀추월 파이널D(7-8위 결정전)에서 김보름, 노선영(25, 강원도청), 양신영(24, 전북도청)이 나란히 달린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노르웨이에 져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전날 8강전에서 일본에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여자 대표팀은 이날 3분11초54만에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해 3분8초35를 기록한 노르웨이에 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22223322278172|제목=김보름·노선영·양신영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8위에 그쳐|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3}}</ref>
         2014년 10월 29일 부터 31일 까지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이 4분24초06으로 1위에 올랐고, 전예진(한국체대-4분24초29)이 뒤를 이어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413|제목=빙속여제 이상화 적수가 없다|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1500m에서는 노선영(강원도청)이 2분05초00으로 1위, 김보름이 2분06초75로 2위, 박초원(노원고등학교)이 2분06초99로 3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가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giantorenge.tistory.com/269|제목=2014 제49회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날짜=2014-11-01|뉴스=OOOOOOOOrenge|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린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B에서 4분14초43으로 3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전예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15초39로 9위를 차지했다. 16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03분39로 6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5초05 6위로 마쳤으나<ref name=":26">{{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88/112286|제목=[스피드 스케이팅] 김보름, 전예진 여자 매스 스타트|성=daum.net|이름=|날짜=11/16/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ref name=":24" /> 2014년 11월 21일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7분26초63을 기록, 9위에 머물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260|제목=[포토Q]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김보름 '아쉬운 9위' - 스포츠Q(큐)|날짜=2014-11-21|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2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2분 04초01로 3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전예진이 8위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김보름은 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ref>{{웹 인용|url=http://sbssports.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S10005984206|제목=[영상] '전예진, 김보름 출전'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여자 매스스타트|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2014년 12월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 출전한 김보름은 4분13초78로 10위에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6/2014120600407.html|제목='질주 재가동' 이상화, 빙속WC 3차대회 500m 1차레이스 金|언어=ko|확인날짜=2017-03-14}}</ref> 6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전예진이 3분08초49로 7위를 차지했다. 7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3초24로 20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8분33초56 4위로 마쳤으나 포인트에서 10위로 밀렸다. 2014년 12월 12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실내빙상장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4분13초61로 13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m.nocutnews.co.kr/news/4340083|제목=이상화, WC 4연속 金…男 팀추월, 사상 첫 金 - 노컷뉴스|확인날짜=2017-03-22}}</ref> 1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전예진, 김보름, 노선영, 박초원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3분08초33으로 6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43으로 18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이바니 블론딘(캐나다, 8분24초01)과 불과 0.02 차이나는 8분24초03의 기록으로<ref name=":27">{{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87|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전예진, 김보름 출전)|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f name=":28">{{웹 인용|url=http://live.sports.media.daum.net/video/general/111792/11239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시상식(김보름 은)|성=daum.net|이름=|날짜=12/14/2014|웹사이트=Daum|출판사=|확인날짜=3/16/2017}}</ref> 김보름은 이날 월드컵포인트 80점을 추가, 총점 168점으로 클라우디아 페흐스타인(독일), 다카기 미호(일본) 등을 제치고 블론딘(350점), 이리네 슈텐(네덜란드, 320점), 마르티나 사블리코바(체코, 255점), 다카기 나나(일본, 200점)에 이어 5위로 뛰어올랐다.<ref name=":16">{{뉴스 인용|url=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121509490760404|제목=이승훈-김보름, 간발의 차로 은메달 거둬…“외모만큼 실력도 훈훈”|뉴스=뉴스웨이|확인날짜=2017-03-14}}</ref> 2015년 1월 31일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 15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이 2분00초99의 기록으로 13위에 올랐다. 함께 출전한 노선영(강원도청)은 2분01초39로 16위에 올랐다. 우승은 헤더 리처더슨(미국-1분56초30)이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9237&code=61161111&cp=nv|제목=[빙상 월드컵] 이승훈 부진한 출발… 스피드스케이팅 5차 월드컵 5000m 9위|확인날짜=2017-03-17}}</ref> 2월 1일 열린 30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4분12초38로 11위를 차지했다.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이 25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015년 11월 13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5-2016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월드컵 1차 대회 3000m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4분08초95로 15위를 차지했다. 14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노선영, 박도영이 2분59초25로 5위를 차지했다. 15일 열린 1500m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83으로 20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6일 열린 매스스타트 디비전A에서는 김보름이 8분36초04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인 이레인 슈카우텐(네덜란드-8분36초09)을 0.05초 차로 제쳤다.<ref>{{웹 인용|url=http://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814817_17821.html|제목='막판 대역전' 김보름, 빙속 매스스타트 짜릿한 금메달|성=장유진|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2013년 2월 월드컵 7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한 이후 2년 9개월만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6/2015111602395.html|제목=빙속 매스스타트 우승 김보름 "평창까지 이어간다"|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2015년 11월 2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5000m 디비전B에서 김보름은 7분5초55의 한국최고기록을 세우며 8위를 차지했다. 21일 열린 1500m 디비전B에서는 김보름이 1분57초76으로 12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23일 열린 매스스타트 디비전A에서 김보름은 마지막 16바퀴째를 돌다가 넘어져 20명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렀다. 일본의 오시기리 미사키와 접촉이 있은 후, 넘어졌다. 김보름이 마지막 바퀴를 돌 때까지 선두 경쟁을 펼쳤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15바퀴까지의 기록만 인정받아 8분01초85를 기록했다. 우승은 8분27초19로 결승선을 통과한 이레인 슈카우텐(네덜란드)이 차지했다. 김보름과 함께 출전한 노선영(26-강원도청)은 8분28초29로 12위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123_0010432511&cID=10501&pID=10500|제목=::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성=NEWSIS|언어=ko|확인날짜=2017-03-23}}</ref> 김보름은 허리 부위의 핏줄이 터지고 연골을 다쳐 월드컵 3, 4차 대회에 나설 수 없게 됐다.<ref name=":19" />
         2015년 12월 2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70회 전국남녀 종합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17초39의 기록으로 정상에 올랐던 김보름은 23일 첫 종목으로 나선 1500m에서 2분3초27을 기록하며 노선영(강원도청, 2분5초17)과 박지우(의정부여고, 2분5초83)에 앞서 1위에 올랐다. 또 5000m 종목에서도 김보름은 7분41초07을 기록하며 박지우(7분47초77), 장수지(유봉여고, 8분9초47)를 크게 앞질렀다. 22일 열렸던 500m 종목에서 41초39로 3위에 올랐던 김보름은 종합점수 171.485점을 받으며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m.sportsq.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656|제목='매스 스타트 희망' 김보름, 전국선수권 여자부 종합 우승|날짜=2015-12-23|언어=ko|확인날짜=2017-03-25}}</ref>
         2016년 2월 11일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2016 국제빙상경기연맹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세계선수권대회 3000m에서 김보름은 4분08초14로 7위를 차지했다.<ref name=":24" /> 14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강원도청)이 8분17초66을 기록, 우승을 차지한 캐나다의 이바니 블롱댕(8분17초53)에 0.13초 차로 뒤져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레이스 중반까지 치고 나가지 않고 기회를 엿봤다. 마지막 1바퀴를 남기고 스피드를 낸 김보름은 5위에 올랐다. 마지막 코너에서 막판 스퍼트에 나선 김보름은 앞선 세 명의 선수를 제치고 블롱댕에 이어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은메달을 확정했다. 함께 나선 박도영(동두천시청)은 12위를 기록했다.<ref name=":21" />
         2016년 3월 19-20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팅장에서 열린 제51회 고빙상인추모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500m 경기에서 박승희는 40초02를 기록, 김보름(23-40초82)을 0.8초 앞섰다.<ref>{{뉴스 인용|url=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774352|제목=박승희·김보름 나란히 1·2위|성=강원도민일보|뉴스=강원도민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03-26}}</ref>
         2016년 10월 2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51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3000m에서 4분17초63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김보름은 28일 1500m에서 2분02초76으로 우승했다. 김보름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1500m, 3000m 2관왕에 오른데 이어 2년 연속 2관왕을 차지했다. 여고 졸업반 박지우(의정부여고)는 2분04초77로 준우승을 차지했고 노선영(강원도청, 2분05초72)은 3위에 올랐다.<ref name=":22" />
         2016년 12월 29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71회 종합스피트스케이팅선수권대회 5000m에서 김보름은 1위를 기록하며 3관왕을 차지해 여자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김보름은 27일 3000m, 28일 1500m 1위를 차지한 뒤 마지막 날 5000m까지 석권했다. 종합 2위는 박지우(의정부여고), 3위는 박도영(동두첮시청)이 차지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윤곽이 나왔다. 중장거리(1500m, 3000m)에서는 김보름, 박도영, 박지우(의정부여고), 노선영(강원도청), 장수지(서울 일반)가 선발됐다. 여자 5000m는 김보름이 뽑혔다. 매스스타트는 3000m 1위 김보름과 2위 박도영, 추천선수 1명이 나선다.<ref>{{뉴스 인용|url=http://m.yna.co.kr/kr/contents/?cid=AKR20161229185500007&site=1000000000|제목=-빙속- 삿포로AG 대표팀 윤곽…이상화·김보름·이승훈 태극마크|날짜=2016-12-29|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03-27}}</ref>
         2017년 1월 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47회 회장배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500m 일반부 경기에서 김보름은 41초54의 기록으로 윤지원(동두천시청), 김유림(의정부시청)을 따돌리고 정상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winternews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32352|제목=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간판 김보름, 회장배 500m 1위 - Winter News Korea|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3일 열린 팀추월에서는 김보름, 임정수, 노선영으로 구성된 강원도청팀이 3분40초63의 대회신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ref>{{웹 인용|url=http://result.sports.or.kr/sk/schedule_result.jsp?classCd=1&toCd=201616&detailClassCd=08&rhCd=19&page=2&gameDate=&baseClassName=6%EC%A3%BC%20%ED%8C%80%EC%B6%94%EC%9B%94&rhName=%EC%A2%85%ED%95%A9&kindCd=10&kindNm=%EC%97%AC%EC%9E%90%EC%9D%BC%EB%B0%98%EB%B6%80&pcntGbn=T&useGbn=S|제목=정보제공 _ 대한빙상경기연맹|확인날짜=2017-04-06}}</ref>
         2017년 1월 16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일반부 매스스타트에 김보름이 출전했지만 선두에 한 바퀴 뒤지면 실격 당하는 규정에 따라 실격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diodeo.com/news/view/2024706|제목=[동계체전] '실격' 김보름|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18일 열린 1500m에서는 김보름이 2분01초70으로 결승선을 통과, 1위에 올랐다. 17일 열린 3000m에서 대회신기록(4분14초54)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김보름은 이날 1500m에서도 대회기록을 갈아치웠다. 김보름은 이주연이 보유하고 있던 대회기록(2분3초63)을 1.93초 단축했다. 노선영(28-강원도청)도 종전 대회기록보다 빠른 2분02초92의 기록을 냈지만 김보름을 넘지 못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박도영(24-동두천시청)이 2분05초36으로 뒤를 이었다. 김보름은 노선영, 임정수(24)와 함께 강원도청 대표로 여자 일반부 팀추월에 나서 금메달을 일궜다. 김보름은 강원도청이 3분23초97의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하는데 앞장섰다.<ref>{{뉴스 인용|url=http://m.kgd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3595|제목=김보름, 전국동계 3관왕 등극|날짜=2017-01-19|언어=ko|확인날짜=2017-03-29}}</ref>
         2017 년 10 월 19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겸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파견 대표 선발전 3000m에서 김보름(강원도청)은 4 분 15 초 4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세운 대회신기록 4 분 17 초 63보다 2초 이상 빠른 기록이다. 이날 7 조 인코스에서 출발해 200m를 21 초 18에 주파한 김보름은 이후 마지막 바퀴를 제외하곤 매 바퀴를 32-33 초대로 돌며 줄곧 선두를 지켰다. 이날 3000m 2 위는 박지우(한국체대)로 4 분 16 초 78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9/0200000000AKR20171019198300007.HTML|제목='장거리 여왕' 김보름, 대표 선발전 3,000m 1위…대회 신기록|성=고미혜|날짜=2017-10-19|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김보름은 20 일 열린 1500m에서 2 분 3 초 31의 기록으로 노선영(콜핑팀-2 분 2 초 99)에 이어 2 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은 7 조 아웃코스에서 박도영(동두천시청)과 레이싱을 펼쳤다. 첫 300m 기록은 다소 느렸다. 김보름은 28 초 17로 주파해 출전 선수 중 10 위에 그쳤다. 그러나 가속이 붙기 시작한 700m 구간부터 스피드를 올려 전체 2 위로 결승선을 끊었다. 김보름은 이미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매스스타트 종목 선발권을 땄고 전날 여자 3000m와 5000m, 팀 추월 종목 출전권도 확보했다. 여자 1500m 종목까지 출전권을 따낸 김보름은 ISU 월드컵에서 각 종목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 획듣에 도전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0/0200000000AKR20171020142600007.HTML|제목=빙속 김보름, 1,500m 출전권도 확보…노선영에 이어 2위|성=김경윤|날짜=2017-10-20|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11 월 11 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의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맨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팀 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 2초 66으로 5위에 올랐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1-13}}</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는 김보름(강원도청)이 넘어져 결승 진출이 좌절됐지만 다치지 않아서 2차 대회에 충분히 나설 수 있게 됐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1-13}}</ref>
         2017 년 10 월 19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52회 전국남녀 종목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겸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파견 대표 선발전 3000m에서 김보름(강원도청)은 4 분 15 초 4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세운 대회신기록 4 분 17 초 63보다 2초 이상 빠른 기록이다. 이날 7 조 인코스에서 출발해 200m를 21 초 18에 주파한 김보름은 이후 마지막 바퀴를 제외하곤 매 바퀴를 32-33 초대로 돌며 줄곧 선두를 지켰다. 이날 3000m 2 위는 박지우(한국체대)로 4 분 16 초 78을 기록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9/0200000000AKR20171019198300007.HTML|제목='장거리 여왕' 김보름, 대표 선발전 3,000m 1위…대회 신기록|성=고미혜|날짜=2017-10-19|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김보름은 20 일 열린 1500m에서 2 분 3 초 31의 기록으로 노선영(콜핑팀-2 분 2 초 99)에 이어 2 위를 기록했다. 김보름은 7 조 아웃코스에서 박도영(동두천시청)과 레이싱을 펼쳤다. 첫 300m 기록은 다소 느렸다. 김보름은 28 초 17로 주파해 출전 선수 중 10 위에 그쳤다. 그러나 가속이 붙기 시작한 700m 구간부터 스피드를 올려 전체 2 위로 결승선을 끊었다. 김보름은 이미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매스스타트 종목 선발권을 땄고 전날 여자 3000m와 5000m, 팀 추월 종목 출전권도 확보했다. 여자 1500m 종목까지 출전권을 따낸 김보름은 ISU 월드컵에서 각 종목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 획듣에 도전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20/0200000000AKR20171020142600007.HTML|제목=빙속 김보름, 1,500m 출전권도 확보…노선영에 이어 2위|성=김경윤|날짜=2017-10-20|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0-22}}</ref>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티알프 인도어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차 대회 팀추월에 출전한 김보름(강원도청), 박지우(한국체대), 노선영(콜핑팀)은 3분2초66으로 5위에 올랐다. 다카기 미호, 다카기 나나, 사토 아야노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은 2분55초77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joins.com/article/22105384|제목=日 빙속 女추월팀, 평창 앞두고 '무서운 질주'…ISU 월드컵서 '세계新' 우승|날짜=2017-11-11|뉴스=중앙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에서 김보름은 넘어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1/12/0200000000AKR20171112002800007.HTML|제목=빙속 이승훈, 월드컵 매스스타트 금메달…대회 2관왕(종합)|성=김경윤|날짜=2017-11-1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노르웨이에서 개최되는 2차대회에 김보름은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보름은 1차대회 1일차 매스스타트 준결승 경기 도중 다른 선수의 스키이트 날에 걸려 넘어 졌으며, 경기 후 허리에 통증을 느껴 1차대회 다른 경기 출전도 포기했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xn--q20b51t9le1sh.com/sub_read.html?uid=19371§ion=sc51|제목=[전남방송] 스피드 김보름 선수, 월드컵 2차대회 출전 포기|뉴스=전남방송|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2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3차대회 여자 3,0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김보름은 4분06초41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4위를 차지했다. 3,000m에서는 다카기 미호(일본)가 3분57초09의 일본 신기록으로 우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2/0200000000AKR20171202034500007.HTML|제목=김보름,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3,000m 14위|성=이영호|날짜=2017-12-02|뉴스=연합뉴스|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4일 열린 여자부 매스스타트에 나선 김보름은 11위에 그치면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김보름은 경기 초반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6바퀴를 남기고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먼저 치고 나간 선두 그룹을 다라잡지 못했다. 하위권에서 막판 스퍼트를 노렸지만 이미 선두권과 격차가 너무 벌여져 결국 11위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편, 독일의 백전노장인 45세의 플라우디아 페히슈타인(독일)은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ookilbo.com/v/49929a51806c4912ad5ee75e37e3b0d5|제목=이승훈ㆍ김보름, 월드컵 매스스타트에서 동반 부진|뉴스=한국일보|언어=ko|확인날짜=2017-12-12}}</ref> 12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유타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4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9분00초72의 기록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일치감치 선두그룹을 만들어 질주한 프란테스카 롤로브리지다(이탈리아)가 8분 53초49로 금메달, 중국의 궈단이 8분57초54로 은베달을 목에 걸었다.<ref>{{웹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712110100073520005174&ServiceDate=20171210|제목='컨디션 회복'김보름 월드컵 4차 대회 매스스타트 동메달: 스포츠조선|확인날짜=2017-12-12}}</ref>
  • 울진군 . . . . 16회 일치
         과거 '''[[강원도]] 관할이었다가'''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2670#0000|1963년 1월 1일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의 <울산바위> 편을 보면 [[울산]]에 있던 [[크고 아름다운]] 바위가 뒤늦게 [[금강산]]을 향해 가다가 강원도로 넘어가자 [[장승]]이 '어서오세요 여기는 강원도입니다'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영덕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장면일 듯.
         [[신라]] 시대에는 [[명주]], [[고려]] 시대에는 동계, [[조선]]~[[대한민국]] 시대(1962년)까지 1000년이 넘도록 강원도 관할이었고, 현재 [[경상도]](경상북도) 관할로는 2014년 현재 겨우 50여 년이 되었다. 경상도 다른 지역보다 강원도 정서가 좀 더 강한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도급 행정구역의 경계지역은 완전히 그 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것도 강원도같이 도내에서도 지역차가 확고한 지역이라면.
         || [[강원도]][br]울진군[br]江原道[br]蔚珍郡 ||<|2> 강원도[br]울진군[br]江原道[br]蔚珍郡 ||<|2> '''[[경상북도]][br]울진군[br]慶尙北道[br]蔚珍郡''' ||
         || 강원도[br]평해군[br]江原道[br]平海郡 ||
         고려시대 이래로 울진현과 평해군으로 나뉘어져 존속해왔으며, 1895년 [[23부제]]의 시행으로 강릉부 울진군과 평해군으로 편제되었다. 1년 뒤 13도제의 도입과 동시에 [[강원도]]로 환원되었다.
         언어학적으로도 삼척과 울진은 [[동남 방언]]과 [[강원도 방언]]의 전이(transition) 지역으로 여겨지는데, (반대로 삼척은 경상도 방언스러운 면이 있는 영동 방언 지역이다.) 울진과 삼척 남부까지는 [[동남 방언]]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북부지역인 울진읍과 인근지역은 강원도사투리, 남부지역인 평해읍과 인근지역은 경상도사투리를 사용한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 깃발을 달고도 불과 19표(0.03%)차로 낙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중요한 건 낙선했다는 거지만. 당시 [[김광원]] 후보도 같은 울진 출신이었을 뿐더러, [[삼척시]] 산불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해 낙선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분열에 따라 당을 탈당, [[서울특별시]] [[마포구]]을 출마를 포기하고 열린우리당 후보가 정해진 이 지역구로 다시 무소속 출마했다. 탄핵열풍에도 열린우리당 후보(박영무, 24.02%)와 표를 나눠먹으며 26.9%로 낙선. 이때 탄핵열풍을 타러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으면 당선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러진 않았고,민주당 후보가 없던 18대 총선에서도 38.9%를 얻으며 낙선.
         다만 다른 성향을 보인다는 것도 경북 내에서는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을 생각하면 안된다. 단적인 예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79.99%를 득표했다. 다만 이게 경상북도의 군 지역에서는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옆동네엔 영덕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87.11%를 득표했다. 읍면별로 뜯어보면 득표율 격차가 군치고는 꽤 나는 편인데 남쪽 끝인 후포면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90.9%(...)라는 어마어마한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강원도랑 인접해 있으며 원전이 있는 북면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30.68%를 득표하였다. 이건 강원도의 영향이 아니라, 원전으로 인해 젊은 층이 많아서 이다. 그 이외 지역들은 울진읍을 제외하고는 박근혜 후보가 전 지역에서 8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그나마 울진읍도 76% 이상 득표하였고.
         [[제50보병사단]] 예하 해룡연대가 울진군에 있다. 울진은 경상북도의 최북단인 탓에 [[제2작전사령부]]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강원도 울진군이었던 시절에도 [[제2작전사령부]]의 모체였던 2군 관할 지역이었다.
  • 강원 FC . . . . 15회 일치
         2008년 11월 10일에 창단한 구단으로 2009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구단의 법인지배구조는 [[시민구단]]이고, 연고지는 도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야구의 사례와 빗대어 광역연고구단으로 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딱히 광역연고와 도시연고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연고지는 "구단과 협약을 맺은 지자체의 행정지역과 그 범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연고지 협약을 맺은 지역이 강원도 전체를 대표하는 강원도청이기 때문에 강원FC의 전체 이름은 "강원도민프로축구단"으로 정한 바 있다.
         원래 강원도는 축구 열기가 정말로 높은 지역으로 이름이 높았다. 강릉시에 위치한 강릉제일고와 강릉중앙고와의 대결인 [[강릉 축구 정기전]]이 고등학교 축구경기임에도 강릉시의 단오제 행사 중,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366890|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K3리그]]에 참가하는 [[춘천시민구단]]의 개막전 3000명 관중 사례만 봐도 강원도의 축구열기는 분명 전국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역적으로 산세가 험해 원정을 가기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어 팀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과거 천안 일화가 천안시의 미온적인 지원 때문에 강릉으로 연고를 옮기려고 했는데, 당시 타 팀들이 "연고 이전은 상관 없는데, 강원도는 불편해서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는 요청이 들어왔었던 사실은 제법 유명하다. 결국 일화가 강릉이 아닌 성남으로 옮기자 이를 반기는 타 구단들의 입장이 신문에 나왔을 정도.]
         일화가 한때 강원도로 연고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확실시 된 것으로 보이자 이를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강릉시에 걸렸을 정도면 강원도가 축구를 얼마나 절실하게 바래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결국 일화는 성남으로 연고를 옮기게 되고, 강릉시의 환영 현수막 대신 기독교 단체의 "일화 OUT" 현수막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1999년 8월 22일에 강릉에서 있었던 K리그 야간경기에서 천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명탑 문제로 경기가 취소되고 기물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일화 입장에선 오히려 강릉을 선택하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 될 정도.
         이런 상황에서 강원도민들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창단한 [[대구 FC]]에 주목하게 된다. 그 이전부터 몇번 창단 준비를 했었는데[* 2005년도에 잠깐 논의는 있었으나 실제 참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001&aid=0001156686|참고기사]] 딱히 성과가 나지 않았으나 대구에 이어서 인천, 경남이 차례대로 창단과정을 거듭함은 물론이고, 컨소시엄의 붕괴로 팀이 해체할 뻔한 대전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는 장면까지 본 강원도는 '''"오려는 축구단이 없으면 시민구단으로 만들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 창단의 시발점은 2008년 4월 28일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01&aid=0002064010|"강원도민프로축구단 창단추진"]을 발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몽준 前 축협회장이 참가하여 "창단을 축하한다"는 발언을 생각하면 이 시기를 구단 역사의 첫 페이지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33646|참고기사]]] 당시 도지사였던 김진선 이외에도 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이광재(태백, 영월, 평창, 정선), 최욱철(강릉)도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여야를 막론한 창단의 동의는 사실상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허나 이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도의회와의 협조는 특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산에 관해서는 다소 논란이 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강원도축구협회와의 협의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깜짝 쇼는 시민들에게는 이벤트였을지는 모르나 축구 및 도의회 관계자들에게는 뜬금포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강원도청측은 당초 발표한 대로 일정에 맞춰 절차를 밟아 창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초기 선수단 구성에 이을용, 정경호가 포함되어 상당한 이슈를 끌기도 했다. 이 둘은 강릉상고[* 現 강릉제일고] 출신으로 널리 퍼진 명성뿐만 아니라 농상전으로 강원도민에게 친숙한 선수들이었기에 초반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 함인섭 . . . . 15회 일치
         |사망지 = {{국기나라|대한민국}} [[강원도 (남)|강원도]] [[춘천시]] 효자3동 17-1 [[춘천의료원]] 병실에서 만성 폐렴으로 병사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촉탁직원이 되었다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 [[황주군|황주]][[춘광원예학교]]와 [[자동농업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의 [[교장]]이 되었다가 이후 주로 [[강원도]]에서 교편을 잡았다. [[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업대학]]의 설립에 주로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농림부 장관으로 잠시 재직하면서 8.25 직후와 건국 직후의 토지보상 문제와 토지 관련 분쟁을 모두 해결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일]]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미 군정]]청이 설치되자 함인섭은 미군정청 [[농산국]] 직원이 되었다. [[1946년]] 미 군정청 [[농림부]] 고문이 되었다가 [[1946년]] [[춘천공립농업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그는 [[강원도]] 도내에 대학이 없는 것일 보고, 강원도내에 대학 설립 추진을 계획하게 되었다. [[1946년]] [[10월 1일]] 춘천농업대학 창립 발기회를 결성하고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몇몇 뜻있는 지역 유지들과 함께 학교 부지를 물색하여 학교 부지로 쓸 20여만 평의 토지를 확보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고, [[1947년]] [[6월 14일]]에는 [[미 군정]] 문교부에 대학 설립인가를 신청해 승락받았다. 그는 [[강원도]] 지역이 삼림과 농촌이라는 점과 당시 농업과 임업이 주 소득원임을 감안하여 신설 대학을 농업대학으로 결정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농림부]] 농업경제국 통계과장이 되고 이어 [[문교부]] 농업교육담당이 되었으나 곧 사퇴했다. 이후 춘천 [[강원도립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농대 설립을 추진하다가 [[1948년]] [[2월 1일]] [[강원대학교|춘천농업대학]](現 강원대학교) 학장 서리가 되었다.
         [[1952년]] [[3월 6일]] 제6대 농림부 장관이 되었다. 농림부 장관이 되자 그는 정부 수립 직후에 시행한 [[토지개혁]] 당시 농지보상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8·15 광복 직후에 발생한 토지관련 분쟁과 토지보상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1952년]] [[8월 28일]], 1952년의 중석불 사건으로 인책 사임<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210200032920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2-10-20&officeId=00032&pageNo=1&printNo=1947&publishType=00020 ]</ref>하였다. 그는 중석불 사건의 피해자라는 시각도 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32200099109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03-22&officeId=00009&pageNo=9&printNo=9047&publishType=00010 ]</ref> 그밖에 그는 강원도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강원도 교육위원 등으로도 위촉되었다. [[1956년]] [[9월 12일]] UN가입추진위원회 전원위원회 강원도지부 부위원장<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6091200329201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09-12&officeId=00032&pageNo=1&printNo=3366&publishType=00020 ]</ref>이 되었다. 1957년 4월 20일 춘천농과대학 학장이 되고 1957년 5월 12일부터 [[1960년]] [[7월 7일]]까지 문교부 중앙교육위원회 위원을 겸임하였다. 그는 또 [[1960년]] [[7월 5일]]까지 고등고시 전형위원에도 위촉되었다.
         [[1962년]] [[8월 11일]] 다시 춘천농과대학 학장이 되었다. 1967년 12월 29일부터 1972년까지 농대 학장으로 농과대학원 원장도 겸직했다. 1968년 1월 1일 [[강원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에 위촉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801060032920702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8-01-*06&officeId=00032&pageNo=7&printNo=6842&publishType=00020 ]</ref> 1968년 1월 1일부터 다시 춘천농과대학 학장에 재선임되었다. 강원대학의 학장으로 있으면서 그는 교내에 학술림을 조성하는데도 기여하였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기독교]] [[장로]]로도 활약하였다. [[1970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고 [[197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그는 재산을 마련하지 못해 자기 집이 없었고, 일부 제자들과 교직원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그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1986년]] [[9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 [[춘천의료원]]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 춘천 강원도립대학 교수
         * 1956년 9월 12일 UN가입추진위원회 전원위원회 강원도지부 부위원장
         * 1968년 1월 1일 ~ [[강원도교육위원회]] 교육위원
  • 울릉군 . . . . 13회 일치
         ||<bgcolor=#F0F8FF> ▲ 주변지역과의 최단거리[* 후포(울진군)가 가장 가까운데, 울진 자체가 1963년 전엔 강원도였다.] ||
         [[경상북도]]의 군.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이자 경북 유일의 섬으로만 이뤄진 지자체다. 심지어 멀리 [[동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오히려 강원도에 가까워 보이지만,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곳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이다(130.3km). 다만 울진은 1962년에 [[경상북도]]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고 울릉도 자체도 1906년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1906년 13도 분도 후에 뜬금없이 '''[[경상남도]]'''로 이관되었다가 1914년에서야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엉뚱하게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와 묶여있다. 그런데 정작 포항에서 울릉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포항 구항은 북구에 있다.--신나는 [[월경지]]-- 이는 포항 남구보다 포항 북구 인구가 미묘하게(2~3만 명 정도) 많아서 그렇게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생각하면 경상북도의 농촌 선거구에 옮기는게 맞겠지만, 선거운동하기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있다. 배편이 있는 울진군에 엮으면 될 것 같지만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선거구만으로도 벅차다. 네 군 모두 벽지 중의 벽지긴 한데 울진은 그나마 낫다. 다시 [[강원도]]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로 행정구역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쉽진 않다. 행정적으로 경상북도에 속한 이후로 말투도 경상북도 사투리가 발달했다. 거기다 원래 울릉도에 살던 강원도 사람들은 대다수 이미 사망하였거나 외지로 떠났고 현재 울릉군 주민들은 경북 출신들이 대다수. 경계가 애매한 지역들은 양쪽 사이에서 소속감이 애매한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면적도 좁은데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경북쪽 정서로 비슷해진 느낌이다.
         [[신라]] [[지증왕]] 때인 512년 [[이사부]] 장군이 '''입에서 연기나는 목각 [[사자]]상'''을 섬에 풀어 놓겠다는 [[야바위]]를 시전하여 울릉도에 있는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했다는 사실은 유명. 이후 신라에게 꾸준히 조공을 바쳤고, [[후삼국시대]]인 930년 완전히 한반도에 귀속되어 이 때부터 공고히 한국령으로 자리잡는다. 이후 1454년 강원도 울진현에 편입되어 1900년 울릉군이 설치되기 전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또한 항공편이 생긴다면 항공기에게 연료란 돈 폭탄이니 활주로가 완공되어 경비행기가 다닌다면 대구나 [[포항공항]]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1시간 내외의 단거리 항공노선은 이륙시 드는 연료비가 전체 연료비에 거의 40%에 육박할만큼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항, 대구보다는 김포노선이 추가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착륙시 활주로 진입과정이 길기 때문에 실제로는 김포노선이든 대구, 포항노선이든 소요시간이라든지 요금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10~20분 차이)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포 제주간 운항시간이 약 1시간 인데 광주나 여수에서도 제주까지 40분은 걸린다.] 게다가 울릉도 경제권이 이미 [[강원도]]가 아닌 [[경상북도]]로 통합되어 있는 데다가[* 울릉도는 천주교 교구도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 소속이다. 교구 소속은 만약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강원 쪽으로 옮겨지면 따라서 [[춘천교구]]나 [[원주교구]] 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주민 대다수가 [[경상북도]] 출신이기도 하고 행정구역이 1914년 이래 경상북도가 되었으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상 마냥 강한 소속감을 가지긴 쉽지 않다.[* 2013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순견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32438|울릉특별자치군 설치법률을 제정하겠다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2017년에는 강원도에서 [[http://m.mbceg.co.kr/post/44307?|고성특별자치군 주장도 등장]]했다.] 그래도 일단 행정구역 관할구역 설정상 경북지방경찰청 소속이다. [[대한민국 해양경찰청|해경]]의 경우를 보면, 경북 해역 담당인 [[포항해양경찰서]]가 아닌 동해해양경찰서의 관할 구역인데 이건 해경이 애초에 '도' 단위로 관할 구역을 끊을 만큼 조직이 커서 도마다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 --물론 동해가 더 가깝기도 하고-- 다른 예로 [[충청남도]] 해안의 경우 평택해경과 태안해경이 분할 관리하며, 이 평택해경은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해안을 아울러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평택해경이 생기기 전에는 태안해경이 전부 담당했다. 부산의 경우 역시 부산해경이 있는데도 부산신항 일대는 창원해경이 담당한다.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점점 관할 구역을 나눠가지는 구조다.
         [[자유한국당]]의 텃밭[* 사실 강원도도 군인 인구가 많고, 높은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노인들이 그들과 접하기 쉬운 환경특성상 ~~안보팔이가 잘 먹혀서~~ 준텃밭에 해당한다. 다만, 도지사나 교육감 등 도 단위 선거에서는 영서와 영동간 갈등, 강릉,춘천,원주의 자존심싸움 등으로 변수가 만들어진다.]인 [[경북]] 및 다수의 영남지역의 특성상 이 곳에서도 예외없이 자유한국당의 텃밭에 포함되어 있다. 경북 본토도 그렇지만 이 지역도 경북 지역에 속하는 영향 때문에 국회의원 출신정당이 대부분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선거구가 [[포항]] 남구와 묶여서 포항 남, 울릉 선거구에 속하기 때문에 포항 남구 지역과 함께 자유한국당의 밭으로 불리고 있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유세도 못 한다~~
          * 연평균 1,236mm에 달하는 울릉도의 강수량은 보다시피 [[봄]] 15%, [[여름]] 25%, [[가을]] 30%, [[겨울]] 30%라는 매우 독특한 그래프를 그리며 [[강원도]]를 능가하는 전국 최다설지다. 최심적설기록이 무려 '''3m'''.
         그 외에도 [[LPG]]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LPG 배관망을 오는 [[2020년]]까지 구축을 완료될 예정에 있다. 저 멀리 끝자락 남쪽 섬인 [[제주도|이 섬]]은 [[LNG]] 저장 탱크를 [[대림산업]]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어, 제주도의 LNG 도입, 울릉도의 LPG 구축을 연계하려는 의도가 있다. 울릉군에 LPG 배관망이 설치될 경우, 기존에는 지금과 같이 [[석유]]와 [[LPG]] 가스 용기를 구매해서 난방 및 취사를 해야 하는 현재와 같은 번거로움도 줄어들고 도시가스 공급을 원활하게 편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차라리 돈을 더 들여와서 전기 보일러, 전기 쿡탑을 설치해서 [[난방]]과 [[취사]]를 둘 다 [[전기]]로 떼우던가..~~
         [[포항시]], [[울진군]] 후포면 후포항,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강릉시]]에서 울릉도로 왕래하는 배를 탈 수 있다. 대부분 [[대아고속해운]]에서 운항한다.
  • 추경호 . . . . 10회 일치
         * 2018년 10월 ~ 2019년 6월: 20대 국회 후반기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간사
         * 2019년 3월 ~ : 자유한국당 전략기획부총장
         * 2019년 3월 ~ 2019년 5월 : 자유한국당 文정권 경제실정백서특별위원회 위원
         * 2019년 6월 ~ : 자유한국당 2020 경제대전환 위원회 활기찬 시장경제(성장과 고용·일자리·재정·공공·금융·규제·주택·부동산·에너지) 분과위원
         * 2019년 6월 :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권한대행)
         * 2019년 7월 ~ : 자유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
         * 2019년 7월 ~ : 자유한국당 日수출규제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
         |임기 = 2019년 6월 17일 ~ 2019년 6월 28일
  • 안내상 . . . . 9회 일치
         * 2019년 [[아내를 죽였다]] ... 최 경위 역
         * 2019년 [[MBC]] 일일드라마 《[[용왕님 보우하사]]》 ... 심학규 역
         * 2019년 [[KBS2]]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 누님의 남편 역(특별출연)
         * 2019년 [[SBS]] 드라마스페셜 《[[황후의 품격]]》 ... 안형사 역(특별출연)
         * 2019년 [[JTBC]] 금토드라마 《[[리갈 하이 (2019년 드라마)|리갈 하이]]》 ... 서동수 역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 김혜자 아버지 역
         * 2019년 [[MBC]] 수목드라마 《[[더 뱅커]]》 ... 육관식 역
         * 2019년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드라마)|아름다운 세상]]》
  • 황광희 . . . . 7회 일치
         | rowspan="9" | 2019년
         | [[2019년]] [[1월 9일]] ~
         | [[2019년]] [[2월 24일]], [[2월 6일]]
         | [[2019년]] [[2월 24일]] ~
         | [[2019년]] [[3월 14일]] ~
         | [[2019년]] [[3월 24일]] ~
         | [[2019년]] [[4월 15일]]
  • 영주시 . . . . 6회 일치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행정구역)|시]]. 인구는 2016년에 들어 10만 9천여 명으로 계속 인구가 줄고 있다.[* 1995년경에는 인구가 약 15만명이었다. 이때부터 따져도 매년 거의 2천명 꼴로 인구가 줄어든 셈. 그런데 2018년 현재 약 16만인 안동시 인구도 그 당시에는 거의 20만명에 달했다. ~~그때가 좋았지~~] 시의 동부에 [[봉화군]], 남부에 [[안동시]], 서부에 [[예천군]]이 있으며 북부는 죽령을 경계로 [[충청북도]] [[단양군]], 마구령을 경계로 [[강원도]] [[영월군]]과 맞닿아 있다.[* 영월군으로는 육로로 직결이 안 되어있어서 단양군 영춘면을 통과해야 한다.]
         북부로 [[소백산]]을 끼고 있어서 북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한 침식 구릉지대로 높은 산은 많이 없는 편. 다른 경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밭만큼이나 과수원이 많다. 특히 시골길엔 [[사과]] 농장이 정말 많다. 기후의 온난화로 [[대구광역시]] 등 경북 남부 지역에서 사과 주산지가 경북 북부로 올라온 덕에 이 지역 사과가 유명해지고 있다. ~~이제 이마저도 머지않아 [[강원도]]•[[경기도]]•[[황해도]] 쪽으로도 올라갈 듯.~~. 이미 영주에서 심은 묘목들이 철원이나 영월로 판매되고 있다.
         기후는 분지가 다 그렇듯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강수량을 보인다. 또 내륙 지역이니만큼 일교차와 연교차가 굉장히 크고, 겨울 기온은 강원도 산골짜기에 필적한다.
         2018년 6월 26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영주시청이 2019년부터 2022년 3월까지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소수서원)~단산면 병산리(선비세상 관광단지) 2.8㎞ 구간에 총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 경북도비 5억, 영주시비 45억원)을 투입해 모노레일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노레일 설치와 함께 탑승장 3곳과 정거장 5곳, 회랑(1548㎡)을 설치하고 모노레일 차량 14량(8인승)을 투입한다고 한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uperidea&no=65078|꿈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train&no=868480|이루어진다]].
         [[동남방언]] 중에서도 안동, 봉화, 예천 등 경북 북부지방 방언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나마 평야가 많은 안동, 예천 등과 달리 산악에 걸터앉은 지형인지라 영주-봉화 사투리는 안동과도 미묘하게 다르다. 때문에 경상북도에서도 사투리가 조금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 지역에서는 사투리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가장 먼 부산보다 그나마 수도권과 가까운 영주의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 어려운 이유는 강원도 남부지방과 충청북도 동부([[제천시]], [[단양군]]) 이들 지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있기 때문. [[부산]]을 비롯한 경남 해안가 사람들은 북한이라고 하면서 어설프다고 놀리기도 한다. 가끔 수도권 사람들이 사투리 별로 안 쓴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은 영주 사투리의 예문이다.
         > 아래께(=며칠 전에) 한데서(=바깥에서) 다릐가(=다른 이가) 마케(=전부/죄다. 사실 이건 강원도 사투리 '마카'의 변형이다) 시스맘(=각자/제각기) 선낱씩(=하나 둘/적은 수/조금씩) 주께는데(=지껄이는데) 메란도 없었(=매우 많다/정신 없다/난장판이다)니더(=경북 북부지방 종결어미. [[동남방언]] 문서에서 유홍준이 능교형과 니껴형으로 구분한 문단 참조할 것).
  • 한선교 . . . . 6회 일치
         * 2019년 1월 ~ 2019년 3월 : 자유한국당 전국위원회 겸 전당대회 의장
         * 2019년 3월 ~ 2019년 6월 :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임기 = 2019년 3월 4일 ~ 2019년 6월 17일
  • 장범준 . . . . 5회 일치
         * 발매일: 2019년 3월 21일
         * 대한민국: 5,856+<ref>{{웹 인용|url=http://gaonchart.co.kr/main/section/chart/album.gaon?serviceGbn=ALBUM&termGbn=month&hitYear=2019&targetTime=03&nationGbn=T|제목=2019년 03월 Album Chart |웹사이트=가온 차트|날짜=2019-04-11}}</ref>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OST Part 3 (2019년)
         | [[윤종신]] || 2019 월간 윤종신 4월호 '별책부록' || 2019년 4월 23일
         * [[2019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 고정출연 ([[송지수]]와 동반출연)
  • 홍상수 . . . . 5회 일치
         * 1998년 - 《[[강원도의 힘]]》
         * 1998년 제51회 [[칸 영화제]] 공식부문《[[강원도의 힘]]》
         *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강원도의 힘]]》
         * 1998년 제19회 [[청룡영화상]] 감독상《[[강원도의 힘]]》
         * 1998년 제19회 [[청룡영화상]] 각본상《[[강원도의 힘]]》
  • 라늬 . . . . 4회 일치
         [*[2019년]] ; [[라늬 솔로 (더쇼)핫데뷔
         [*[2019년]] ; 2019년 대구 미스코리아선발대회 심사위원위촉
         [*[2019년]] ; [[지대로s ]]다이어트 광고 모델
  • 박근혜 . . . . 4회 일치
         |현황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구속영장에 따라 2019년 4월까지 미결수용자 신분으로 수감 후 상고심이 완료되지 않아 공천개입 실형 2년 집행 중<ref>http://www.nocutnews.co.kr/news/5073073</ref>
         |강원도 GOP 총기 사고, 문창극 총리 지명자 사퇴, 주 후반 정홍원 총리 유임 발표
         2019년 4월 11일 통계청이 새롭게 공개한 소득분배지표에서 2011~2017년 한국의 분배 상황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보수정권에서 소득분배가 지속적으로 악화됐기 때문에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2019년 4월 11일 통계청이 처음 공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소득분배 부문 추가 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팔마비율(Palma ratio·처분가능소득 기준)은 2011년 1.74배에서 2017년 1.44배까지 하락했다. 팔마비율은 호세 가브리엘 팔마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개발한 소득 불평등 지표로 소득 상위 10% 인구의 소득 점유율을 하위 40% 인구의 소득 점유율로 나눈 값이다. 숫자가 낮아졌다는 것은 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는 의미다. 또 다른 분배지표인 소득 10분위 경곗값 비율(P90/P10)도 2011년 6.42에서 2017년 5.79까지 떨어졌다. `소득 10분위 경곗값 비율`은 처분가능소득 기준 가계소득 상위 10% 경곗값을 하위 10% 경곗값으로 나눈 수치다. 이날 공개한 다른 2개의 소득분배지표(P90/P50, P50/P10) 모두에서도 역시 2011~2017년 소득분배가 개선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은 이명박 정권 중반기인 2011년부터 약 6년 반 동안 보수 정권이 이어진 후 마지막 반년 가량 동안에는 진보 정권인 문재인정부 집권기에 해당한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018년 8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면서 최저임금을 급속도로 인상해 일어난 '고용 참사'의 책임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성장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역시 2018년 8월 24일 "양극화가 유례없이 심화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이 역주행한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말한 바 있고 그 근거를 묻는 질문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최근 10년간 악화됐다는 보고서를 본 기억이 있어 그렇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8년 12월 인사청문회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양극화가 지속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회견에서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라고 언급하는 등 진보 진영에서는 지난 두 차례의 보수 정권 집권기간에 분배 상황이 악화됐다고 주장해 왔다. 이두원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복지 확대 정책을 펼쳐 왔다. 보수 정권에서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진보 세력의 주장은 이 같은 정책 요인을 전혀 감안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f>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41161511</ref><ref>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4/224437/</ref>
  • 한명회 . . . . 4회 일치
         그는 종조 할아버지들인 [[한상경]](韓尙敬)과 [[한상덕 (조선)|한상덕]]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종조 할아버지 한상환(韓尙桓)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뒤에 [[자망산]]을 찾아가 [[류태재]](柳泰齋)의 문하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친구 [[권람]] 등을 만나 사귀었는데, [[강원도]] 자망산의 유학자 [[류태재]]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 등을 만나 사귀게 된다. 이후 그는 [[권람]], [[서거정]] 등과 함께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웅지를 품게 된다.
         또한 [[병조]][[판서]] 재직 중 [[평안도]]와 [[함경도]]에 병력을 이끌고 출정하여 변방을 출몰하는 [[여진족]]과 야인 부락을 토벌하고, 북변을 수습한 뒤, 북방에 축성하여 방어를 확실히 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 황해·평안·함길·강원도 도체찰사 등을 역임했다. 그해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었고, [[1458년]](세조 3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승진했다.
         [[1459년]]에는 황해, 평안, 함길, 강원 4도의 병권과 관할권을 가진 4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임명되었다. 그는 당시 역할이 강화된 [[승정원]]과 [[육조]], 변방 등에서 왕명 출납권과 인사권, 병권 및 감찰권 등을 한손에 쥐게 되었다.<ref name="park115"/> [[1460년]] 그의 병권 장악을 경계한 [[조선 세조|세조]]는 [[평안도]]와 [[함길도]], [[강원도]]의 도체찰사 직은 [[신숙주]]에게 넘긴다.
         [[1463년]] 4도 순찰의 명을 받고 [[평안도]], [[강원도]], [[함길도]], [[황해도]]를 순찰하였다. 그가 순행을 갈 때 특별히 세자가 나와서 그를 전송하였다.
  • 허목 . . . . 4회 일치
         [[1636년]] 42세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영동(嶺東)으로 피난하였다. [[1636년]] [[12월]] 미수는 강원도로 피란을 하였다가 선대의 고향인 연천으로 돌아오니, 동생인 죽천(竹泉) 허의(許懿)가 모친을 모시고 남쪽으로 내려가고 없었다.<ref name="young200702"/> 행정리는 허목의 동생 죽천 허의의 처외가인 순흥안씨들이 살고 있는 고장이었다. 미수는 모친이 계신 의령으로 내려와 모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경상남도]] 의령에서 지냈다. 그때 세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놓은 것이 지금의 행정리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전한다.<ref name="young200702"/> [[1637년]] 다시 호란을 피해 [[강원도]]로 가 [[강릉]], [[원주]]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경상북도]] [[상주]]에 이르렀다.
         그는 [[윤휴]], [[윤선도]], [[허적]] 등과 함께 3년복설 주장하며 1년복설을 주장하는 [[송시열]], [[송준길]]을 맹공격하던 그는 [[송시열]]과 맞서다가 패하자, 좌천되어 [[1660년]](현종 1) [[10월]] [[강원도]] [[삼척군|삼척]][[부사]](三陟府使)로 전임되었다.
         이후 [[경기도]] 마전의 미강 서원, [[전라남도]] [[나주시|나주]]의 미산서원(尾山書院), [[전라남도]] 나주(羅州) 미천서원, [[경상남도]] [[마산]]의 회원서원(檜原書院), [[삼척]]의 육향산 미수사 등에 제향되었다. 뒤이어 사림(士林)들이 공의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경남]] [[의령]]에 [[미연서원]](嵋淵書院)을 세워 봉안 하였으며 문목공(文穆公) [[한강 정구]](寒岡 鄭逑)를 주향(主享)으로 모신 [[창원]]의 [[회원서원]](檜原書院)과 [[강원도]] [[삼척]]의 [[경행서원]](景行書院), [[충청남도]] 부여의 [[도강영당]](道江影堂)등에 배향(配享) 하였다.
  • 궁예 . . . . 3회 일치
         궁예의 승려 시절에 대해 《삼국사기》는 그가 "장성하자 승려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기상이 활발하며 뱃심이 있었다."고 전해, 견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예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조작하고 왜곡했어도 그의 승려 시절의 모습과 이후 그가 출가해 혁명가로서 활동할때의 초반 행적들에 대해서만큼은 미흡하나마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태조 세가에는 궁예 정권의 핵심인물로서 궁예가 축출되고 왕건이 즉위한 지 7일만에 내군장군(內軍將軍) 은부와 함께 주벌된 소판 종간이라는 인물에 대해 "젊어서 승려가 되었던 자"라고 적고 있어, 일찍부터 궁예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종간이 궁예의 승려 시절, 즉 세달사에서 궁예를 알게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ref>정청주, 같은 책, p.75</ref> 세달사에서 승려로 지내던 궁예가 어느 날 재(齋)에 나아가 행렬에 들었는데, [[까마귀]]가 그의 바리때에 '왕(王)' 자가 새겨진 상앗대를 떨어뜨리고 간 것을 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궁예는 자신이 장차 크게 떨쳐 일어날 것이라 굳게 믿었다고 한다.<ref>궁예가 승려로서 출가한 세달사는《삼국사기》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흥월리 흥교동 대화산 서상복에 그 절터가 남아 있다(정영호, 「신라 사자산 흥녕사지 연구」 『백산학보』7, 1969, p.27). 또한 세달사는 균여의 《십구장원통기》에도 등장하며 《삼국유사》의 세규사(世逵寺)와 같은 곳으로(김상현 「신라 화엄학승의 계보와 그 활동」 『신라문화』1, 1984, p.56) 정청주는 세규사의 장원이 위치해 있던 명주(溟州) 나리군(奈李郡)을 나성군(柰城郡)으로 보고, 세규사(세달사)가 위치해 있었던 [[소백산]](小白山)과 당시 나리군의 태수(이기백 「신라 정토신앙의 다른 유형들」 『신라사상사연구』 1986, p.164)였던 [[김흔]](金昕) 집안([[김주원]]계 강릉 김씨)과의 연고를 들어, 지금의 영월과 그 인근 지역인 [[평창]] · [[단양]] · [[제천]] 등지에 장원을 가지고 있었던 세규사에서 멀지 않은 명주 지역의 [[강릉 김씨]] 일족으로 김흔의 방계에 해당하는 후손들이 일찍부터 궁예와 연결되어 그를 비호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까마귀가 '[[왕]]' 자가 적힌 상앗대를 떨어뜨리고 갔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세달사에서 그가 왕자 출신임을 알아본 [[세달사]]의 사원세력, 또는 영월 일대의 호족 세력들이 궁예에게 장차 거병하여 왕이 될 것을 부추긴 한 일화로서 해석되고 있다. 이후 궁예가 명주를 자신의 세력 기반으로 삼았던 것이나, 궁예가 축출되고 명주가 한동안 왕건에게 항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사실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청주, 같은 책, p.71~74, p.78~79).</ref>
         《삼국사기》 궁예전은 이때 궁예가 거느린 무리가 3,500인(신라본기에는 600인)에 이르렀으며<ref>궁예의 이 병력은 당시 실직(삼척)에 배치되어 있던 옛 신라군도 가담했을 가능성이 이기백에 의해 지적되었으며(이기백, 「고려경군고」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 『고려병제사연구』, 1968, p.47 ; 「고려 초기 중앙군의 조직과 역할」, 『고려병제사』, 1983, p.20) 처음 명주를 출발할 때의 수가 600이고 명주에 들어가 모집하여 증가한 수가 3,500이라는 해석도 있다(박한설, 「궁예성명고 - 고구려 계승 표방과 관련하여」, 『이선근박사고희기념 한국학논총』, 1974).</ref>, 궁예는 이를 14대(隊)로 나누어 편재하고 김대(金大) · 검모(黔毛) · 흔장(昕長) · 귀평(貴平) · 장일(張一)<ref>정청주는 이들 인명을 김대검(金大黔) · 모흔장(毛昕長) · 귀평 · 장일로 떼어 읽었는데, 귀평의 경우 『흥녕사징효대사보인탑비』의 음기(陰記)에 「귀평 일길간 제주(貴平一吉干提州)」로 되어 있는 점을 들어 당시 [[제천|제주]] 지역의 호족으로, 김대검(김대)의 경우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당시 강원도 평창군의 토성(土姓)으로서 김씨가 등장하는 점을 들어 평창(당시에는 나성군의 영현이었던 백오현) 출신의 호족으로 추정하고, 나아가 김대검(김대)가 몰락한 김흔계의 후손일 가능성도 제기하였다(정청주, 같은 책, p.75~76).</ref> 등을 뽑아 사상(舍上), 즉 부장으로서 임명하여 지휘하였다고 적었다. 나아가 궁예는 명주에 들어간 뒤부터 장군(將軍)을 자칭하였는데, 하대 신라에서 반란의 지도자나 호족 세력이 장군을 자칭한 것은 궁예가 최초였다.<ref>궁예 외에 장군을 지칭한 것은 904년과 905년에 공주장군(公州將軍)을 칭한 홍기(弘奇)와 평양성주장군(平壤城主將軍)을 칭한 검용(黔用)을 제외하면 경명왕 2년([[918년]])까지 거의 20년이 넘도록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장군은 신라에서는 당(幢)이나 정(停) 등의 군단을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으로서 진골 귀족이 독점했던 무관직이기에 함부로 자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궁예가 이를 자칭한 것은 그가 신라 왕족, 즉 진골 귀족 출신이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정청주, 같은 책, p.77).</ref> 궁예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신라에 등을 돌린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는 세상이 끝나는 날 현신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미륵불이라 자처했고, 백성들은 그런 궁예를 자신들을 구원해줄 대상으로 삼았지만, 궁예가 이때부터 자신을 미륵으로 여겼다는 학계 일부의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이때의 궁예는 아직 양길의 부하로 있었던 시절이었고, 또 명주를 장악한 후 황제나 왕도 아닌 장군만 자처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미륵으로 자처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명주를 장악한 궁예는 진성여왕 9년([[895년]]), [[동해]]를 끼고 북상해 영서 지방으로 넘어와 저족, 성주([[화천]]), 부약(금화), 금성(금화군), [[철원]] 등 10여 군현을 점령하여 세력 기반을 다졌고, 지금의 강원도 전 지역을 장악한 궁예는 이듬해 철원을 자신의 도읍으로 삼았다.
  • 권희동 . . . . 3회 일치
         || '''연봉''' || 1억 4000만원 (4.9%↑, 2019년) ||
         ==== [[/2019년|2019 시즌]]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권희동/2019년)]
  • 인교진 . . . . 3회 일치
         * 2019년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곽하니 역
         * 2019년 [[KBS2]] 월화드라마 《[[국민 여러분!]]》 ... 최욱현 역 (특별출연)
         * 2019년 [[JTBC]] 《[[다큐 플러스]] 47회 : 당신의 눈은 안녕하십니까?》 내레이션, 출연
  • 정시아 . . . . 3회 일치
         * [[2019년]] [[Netflix]]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 [[2019년]]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 ... 매각교 신자 역 (특별출연)
         * [[2019년]] [[MBC]] 토요드라마 《[[황금정원]]》 ... 오미주 역
  • 창작:무동군 . . . . 3회 일치
         설정상 대한민국 강원도 산기슭(해안면과 서화면 사이로 추정됨)에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몇몇 기업이 계획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는 물론 버스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으며, 한때 터널과 지하철까지 공사된 적이 있었으나 여러가지 착오[* 휴전선 바로 아래쪽이라 북한군이 땅굴을 파면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반대가 심했다.]로 인해 중단되었다. 현재는 도로와 터널을 통해 무동군으로 올라올 수 있다.
         >(전략) 강원도의 설악산 근방에 예로부터 오동나무를 팔았다는 무동군이라 하는 동네가 있다. 사시 사철을 가리지 않고 안개가 자주 끼며, 여름이 되면 그 안개가 매우 짙어져 눈에 보이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농담삼아 무동군(無動郡)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안개가 자욱할 때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졌기에 사람들은 안개가 끼면 모두들 문을 닫아 걸고 돌아다니기를 삼갔다. 그러나 옅은 안개가 마을과 숲을 감싸는 모습이 어떤 면에선 도원경처럼 보였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줄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수고치 않아도 저절로 재물이 모여드니 여러 모로 괴이하였다. 물론 사악한 자들도 안개를 틈타 마을 안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에 요행과 불행이 함께 늘어났다. 동네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하여 덕망 있는 선비에게 부탁해 상소를 올리자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단속하였으나, 안개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실패하기가 일쑤였다.
         시골이라고 하기엔 큰 편이다. 인구는 10만여 명으로, 강원도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시로 승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동네'''였'''다.
  • 최다빈 . . . . 3회 일치
         | 2019년 2월 4일-10일
         | 2019년 1월 11일-13일
         | 2019년 9월 19일-22일
  • 추자현 . . . . 3회 일치
         2019년 5월 29일 혼인신고한지 2년만에 아들 바다가 돌을 맞이해 돌잔치겸 결혼식을 올렸다.
         * [[2019년]]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드라마)|아름다운 세상]]》 ... 강인하 역
         * [[2019년]]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 아사혼 역
  • 홍국영 . . . . 3회 일치
          | 사망지 = [[조선]] [[강릉시|강원도 강릉]]에서 병사
         정조는 홍국영을 퇴진시키고 숙위소를 혁파시켰으나 동시에 그의 백부 [[홍낙순]](洪樂純)을 정승에 임명했다. 따라서 한동안 그의 세력은 조정에 계속 건재했으며 그 자신도 계속 궁중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2월에 홍국영의 당여들이 서명응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다가 반대로 조정에서 축출 당한다. [[1780년]] 1월에는 홍낙순이 파직과 문외출송되고, 다음달 26일 김종수의 탄핵상소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출 처분을 받았다. 김종수의 탄핵 상소를 시작으로 하여 홍국영에 관한 탄핵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중록》은 김종수의 상소 역시 정조의 뜻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강원도]] [[횡성]], 그 다음에는 [[강릉]]으로 방출되었던 홍국영은 결국 이듬해인 [[1781년]]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는 홍국영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있었다고 한다. [[1977년]] 발간된 《전국문화재총람》에는 〈강릉 전 홍국영묘〉라는 제목으로 홍국영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묘소가 설명되어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묘소의 넓이는 약 50평, 크기는 약 1미터 정도로 추정했으며, [[1972년]] 후손들이 발견하였으나 아무런 유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뒤에 [[강릉 종합 운동장]]으로 개발되었으며 지금은 홍국영 묘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묘소 인근에는 홍국영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가옥이 전하는데, 명확하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사료는 아직 없다.
  • 고수희 . . . . 2회 일치
         * [[2019년]] : 《[[자전차왕 엄복동]]》 - 포목점 여주인 역
         * [[2019년]] : 《[[어린 의뢰인]]》 - 미애 역
  • 김혜옥 . . . . 2회 일치
         * [[2019년]] [[KBS1]] 일일연속극 《[[여름아 부탁해]]》 ... 나영심 역
         * [[2019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 박경석(1933) . . . . 2회 일치
         북한군 포로 생활 중에 국군에서는 박경석 중위가 전사한 줄 알고 가족에게 전사통지서 전달과 전쟁이 끝난 후, 국립묘지에 박경석 중위의 묘지를 안장하였다. 나중에 자신의 묘지가 안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파묘하지 않고, 자신의 생애가 다해 현충원에 안장되는 날 폐쇄한다고 한다. 軍 현역 중 불의에 맞써 마음이 흔들릴때마다 자신의 안장 무덤을 찾아 마음을 다잡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http://www.snmb.mil.kr/cop/tombSearch/selectTombSearchList.do|서울 현충원 안장자 검색에 9사단 소속 강원도 정선에서 사망한 이가 바로 박경석 장군 자신이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 이어 정치군인 [[노태우]], [[박희도]] 등이 줄줄이 이 자리에 앉앗다]는 강원도 홍천에서 월남 파병 군사 훈련을 받던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중대원을 살린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 [[강재구]] 대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대대이다. [[재구대대]]는 그 이름답게 월남전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워 세계 만방에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용맹을 빛내었다. 그런 재구대대의 초대 대대장에 박경석 중령이 임명되었다.[[http://cafe.daum.net/pks6464/MnHf/114|재구대대를 포함한 월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활약상은 파병부대를 지휘한 장군들의 각종 수기에 나와 있지만 박경석 장군의 재구대대장 시절의 회고부분은 월남전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군은 월남 파병에 있어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독자적인 한국의 작전지휘권과 기타 수송분야의 한국업체의 참여를 미국에 정식 요청하였고, 협상 끝에 월남전에서 한국군의 자체적인 작전지휘권을 얻어냈다. 이에 탄생한 것이 바로 [[http://panzercho.egloos.com/2765059|중대기지전술]]이다. [[주월한국군]] 전투부대는 각 마을마다 중대별로 기지를 세워, 민간인과 월맹군.베트공의 민간 침투를 차단하는 이른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한다는 전술을 통해 지역 민간인의 지지를 얻으면서, 전투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수월해졌다. 나중에 이 작전이 성공하자 대만과 기타 자유진영의 군사고문단이 배우고 가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 배두나 . . . . 2회 일치
         *2019년 단편영화 《이경미 감독 신작(가제)》
         *2019년 《#아이엠히어》(프랑스)
  • 서명선 . . . . 2회 일치
         영조 후반기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오르고 의주부윤으로 나갔다가 이후 강원도관찰사와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도승지]] 등을 지낸다. 이어 강원도[[Javascript:hplink('18365')|관찰사]] 등을 거쳐 [[Javascript:hplink('78690')|부제학]](副提學)에 오르고 1774년 [[Javascript:hplink('127923')|이조]]참판 때, 세손(世孫: 正祖)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던 재상 [[Javascript:hplink('172387')|홍인한]](洪麟漢)을 탄핵, 파직시키고 [[Javascript:hplink('136845')|정조]]를 즉위하게 했다.
  • 양준혁 . . . . 2회 일치
         * [[JTBC]] 《[[뭉쳐야 찬다]]》 (2019년)
         * [[JTBC]] 《[[찰떡콤비]]》 (2019년) - 11회
  • 에릭 (가수) . . . . 2회 일치
         * 2019년 [[tvN]] 《[[현지에서 먹힐까?]] 시즌 3》
         * 2019년 [[MBC Every 1]] 《[[세빌리아의 이발사 (텔레비전 프로그램)|세빌리아의 이발사]]》
  • 영양군 . . . . 2회 일치
         [[경상북도]] 동북부에 있는 군. 면적은 815.14㎢ , 서쪽은 [[안동시]], 북쪽은 [[봉화군]], 남쪽은 [[청송군]], 동쪽은 [[영덕|영덕군]], [[울진군]]과 접하고 있으며 인구는 2018년 2월 기준 약 1만 7천 명. 영양군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는 [[경상북도]] [[울릉군]]뿐이다. 그나마도 울릉군은 자그마한 섬이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이 영양군이 (섬을 빼고) [[육지#s-2|육지]] 중엔 사실상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셈이며, 이는 [[팔라우]] 전체 인구와 거의 비슷하다. 아울러 인구 밀도 21명/㎢로 전국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시군이다. 참고로 인제군의 인구밀도는 20명/㎢. 그러나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고 인제군에서 군 복무를 하는 대다수 군인들을 감안하면, 실제 인구밀도는 오히려 영양군이 인제군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 [[이재오]] - 프로필에는 [[강원도]] [[동해시]]라고 되어있지만 그것은 태어난 것뿐이고 실제 어려서부터 영양에서 살았고, 심지어 영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프로필 바꾼것도 TK이미지 벗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매일신문]]이 이재오가 네이버 프로필 출생지를 영양에서 동해로 바꾼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2인자였으니 영양 출신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간 사람이다.
  • 이근직 . . . . 2회 일치
         이후 귀국하여 [[강원도청]]에서 [[조선총독부]]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43년에 [[평창군]]수, 1944년에 [[원주시|원주]][[군수]]를 지냈다.
         [[8.15 광복]] 이후에도 1949년까지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서울특별시청]] 산업국장, 1952년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 제2국장, 1952년 [[함태영]]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1955년 2월부터 1957년 9월까지 [[경상북도지사]]를 지냈다. 경상북도지사 재임 중이던 1957년 8월 [[가짜 이강석 사건]]이 일어났다. 1957년 9월부터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 장관|장관]]을 지내다가 1958년 6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자유당]] 당무위원으로 있다가 1959년 3월부터 1960년 5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장관]]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 재임 중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 이로 인하여 구속 기소되었다.
  • 장문규 . . . . 2회 일치
         *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2019년, MBC)
         * 《[[보이스 3]]》 (2019년, OCN)
  • 장인한 . . . . 2회 일치
         * 1967년 《[[산불 (영화)|산불]]》, 《[[고발]]》
  • 정찬성 . . . . 2회 일치
         '''정찬성이 6월 2일 오전, 열심히 연습하던 도중에 [[십자인대]]가 심하게 파열되면서, 라마스전이 취소되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출전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복귀전은 내년 하반기나 2019년이 되서야 가능할 전망이다. 라마스전을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무릎 상태까지 악화된다면 정찬성의 맷집이나 기량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더군다나 버뮤데즈 전 이후 어깨 부상이 재발하였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인 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격투기 팬들은 정찬성이 오래 걸리더라도 완치해서 다시 옥타곤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찬성이 생각보다 수술이 매우 잘 되어서 내년 상반기 복귀를 목표로 열심히 재활을 한다고 밝혔고,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한 최두호와 같이 "건강해져서 꼭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했을 팬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공익공무중 얻은 휴가중 강원도의 한 계곡에 갔는데, 꼬마들에게 굴욕을 당했다. ~~아저씨 싸움 잘하는 아저씨야. 사실 아저씨가 [[UFC]] [[추성훈]]이야(딸바보인 건 비슷하다)~~
  • 최두선 . . . . 2회 일치
         |거주지 = {{KOR}} [[서울특별시]] <br/> {{국기|일제 강점기}}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前) <br/> {{국기|일제 강점기}} [[창원시|경상남도 창원]](前)
         본관은 [[동주 최씨|동주]]. 호(號)는 각천(覺泉)이다.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제8대 [[대한민국의 총리|국무총리]]를 지냈으며 [[유엔]]총회 한국대표,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육당 최남선]]의 동생이다.
  • 최채흥 . . . . 2회 일치
         ||<:> '''연봉''' || 4000만원 (48.1%↑, 2019년) ||
         9월 25일에 7이닝을 소화하며 순식간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18⅓이닝으로 늘어나자 구단측에서 노린것인지, 막판 순위싸움에서 요긴하게 기용하려고 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불펜으로만 등판, 정규시즌 소화 이닝이 28이닝으로 30이닝을 넘기지 않아 '''2019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는 강백호같이 눈에 띄는 특급 신인들이 많지 않아 올해와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신인왕이 유력하다.]
  • 태종무열왕 . . . . 2회 일치
         [[642년]] 김춘추와 연개소문 사이의 교섭은, 신라에게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 전체를 내놓고 현재의 [[영남]] 지역에 국한된 약소국으로 남기를 요구하는 고구려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한강 유역<ref group="주">현재의 [[경기도]], [[강원도 (남)|강원도]] 및 [[충청북도]] [[충주]]권</ref>을 잃으면 패망을 면할 수 없다는 신라 지배자들의 인식이 타협의 여지 없이 상충되어 결렬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당시의 현실에서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춘추의 선택은 그가 현대 [[한국인]]이 아닌 고대 [[신라]]인, 그것도 신라의 지배자였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한주완 . . . . 2회 일치
         * [[2019년]] 《[[돈 (2019년 영화)|돈]]》 ... 백종필 역
  • 허안나 . . . . 2회 일치
         |배우자=1살 연상의 남자친구(2019년 1월 결혼 예정)}}
         허안나는 [[1984년]] [[11월 15일]] 생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였고 연극배우를 꿈꾸다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에 의해 개그우먼 시험을 봐 합격하였다.'''2005년''',연극배우로 데뷔하였고 '''2007년, MBC 16기 특채 개그우먼'''으로 들어갔다, 2008년 당시 개그콘서트 감독이었던 김석현 감독에 의해 걸투홀에서 발견돼 특채로 들어갔으나 2009년 다시 시험을 봐 '''KBS 공채 24기 개그우먼'''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나를술푸게하는세상》, 《슈퍼스타 KBS》 코너를 연속으로 히트 시키며 '''KBS연예대상 2010년코미디부분우수상, 2014년코미디부분우수상'''을 받고 2016년 이후 코미디빅리그로 이적한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망원동짐승녀'''라는 웹툰을 연재중이며,'''안나Tv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2019년 1월 일반인남자친구와 결혼을한다.
  • 강원래 . . . . 1회 일치
         | 가족 = 강원도(형) <br/> 강원미(여동생) <br/> 강선(姜宣,아들)
  • 고원희 . . . . 1회 일치
         * 2019년 [[KBS2]] 월화드라마 《[[퍼퓸 (드라마)|퍼퓸]]》 ... 민예린 역
  • 길은혜 . . . . 1회 일치
         * [[2019년]] [[KBS2]] 수목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 ... 금루나 역
  • 김경애(배우) . . . . 1회 일치
         * 2003년 《[[불어라 봄바람]]》 - 강원도 할머니 역
  • 김성곤 . . . . 1회 일치
         1973년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에 취임하였고 1974년 대한양회를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에 취임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1975년 [[고려대학교]] 교우회장 자격으로 졸업식 축사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묘는 원래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군]]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 김성곤 (1913년) . . . . 1회 일치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 김형준(배우,가수) . . . . 1회 일치
         (2017년 4월 6일 ~ 2018년 12월 29일[* 원래 2019년 1월 5일 전역 예정이었다. 그러나 군 복무 기간 단축 시행으로 인하여 7일이 줄었다. [[https://youtu.be/-i5oWnF_f30|경기남부경찰청 페이스북 라이브 2018년 8월 6일 방송]]에서 본인의 소감을 들을 수 있다. 01:14:27부터. ~~너↗어무 좋아요 진짜아!~~])||
  • 김효원 . . . . 1회 일치
         [[강원도]] [[원주]]에 별장이 있었다 한다.
  • 노행하 . . . . 1회 일치
         * 《[[녹두꽃]]》 (SBS, 2019년) - 버들이 역
  • 다크 유니버스 . . . . 1회 일치
          2019년 예정.
  • 단종 . . . . 1회 일치
         그 이듬해에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집현전 출신 학사 관료들과 일부 무인 세력이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다 발각되어 제거되었고, 이로 인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당했다. 그 후 유배중이었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 계획을 세우다 발각되어 사사당하였고, 이로 인해 결국 단종은 세조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사약으로 사사되었다는 설과 활줄로 교살당했다는 설 등이 있다.) 단종의 시신은 엄홍도란 사람이 몰래 거두어 매장하였다고 전한다.
  • 문무왕 . . . . 1회 일치
         7년([[667년]]) 7월에 3일 동안 큰 잔치를 베풀었고, 당에서는 신라의 장군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장군으로 발탁하고 대아찬 일원(日原)은 당의 운휘장군(雲麾將軍)으로 임명되었는데, 문무왕은 지경과 개원에게 각각 파진찬과 [[대아찬]]의 관등을 주고, 일원을 운휘장군으로 명한다는 고종의 칙명은 왕궁 뜰에서 받도록 명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7년(667)</ref> 또한, 같은 달 고종은 유인원과 신라의 [[태종무열왕#가계|김인태]](金仁泰)에게 명하여 비열성(卑列城)<ref group="주">지금의 [[강원도]] [[안변군]]</ref>의 길을 따라, 신라 병사를 징발해 다곡(多谷)·해곡(海谷) 두 길을 따라 평양으로 모이도록 하였다.<ref name="삼국사기-667"/> 가을 8월에 문무왕은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출발해 9월에는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해 이적(李勣)과 합류하기 위해 기다렸다.<ref name="삼국사기-667"/> 이때 신라군은 당군을 배제한 단독 작전수행 대신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면서 배를 계속 띄워 당군의 동정을 살폈고, 당군이 아직 평양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알고 먼저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먼저 고구려로 갈 길을 뚫기로 했다.<ref name="삼국사기-671"/> 하지만 칠중성을 치기 전, 겨울 10월 2일에 평양성 북쪽 2백리 지점에 도착한 이적은 신라측 이동혜(尒同兮) 촌주(村主) 대나마 강심(江深)에게 부쳐, 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에게 “칠중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곧바로 평양으로 와서 당군에 군량을 공급하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신라군은 칠중성 공격을 포기하고 수곡성(水谷城)으로 향했지만,<ref name="삼국사기-671"/>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렀을 때 이적은 어느새 돌아가버렸고, 신라군도 그냥 돌아왔다.<ref name="삼국사기-667"/> 12월에 당은 다시 웅진도독부의 유진장군(留鎭將軍) 유인원을 보내어 고구려 정벌을 돕게 하면서 문무왕에게 대장군의 정절(旌節)을 주었다.<ref name="삼국사기-667"/>
  • 문성주 . . . . 1회 일치
         시즌후 상무에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2019년]] [[1월 10일]] 현역 입대가 확정되었다.
  • 박신양 . . . . 1회 일치
         | [[2019년|2019]]
  • 박진주 . . . . 1회 일치
         | 2019년
  • 분류:강릉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고성군(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고성군(강원도)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동해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삼척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속초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양구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양양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영월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원주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인제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정선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철원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춘천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태백시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평창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홍천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화천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분류:횡성군 출신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송지효 . . . . 1회 일치
         * 2019년 방콕 한류박람회 홍보대사
  • 송창현 . . . . 1회 일치
         [include(틀: 관련 문서, top1=한화 이글스/2019년)]
  • 아이유 . . . . 1회 일치
         ! scope="row" | [[페르소나 (2019년 영화)|페르소나]]
  • 안상미 . . . . 1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정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1998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 (쇼트트랙 선수)|김윤미]]와 함께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강원도]]에서 열린 [[1999년 동계 아시안 게임]]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에서 종합 2위에 올랐다. [[폴란드]] [[자코파네]]에서 열린 [[200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3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1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강릉시|강릉시청]]에서 실업 선수로 활동하였다. 은퇴한 후, [[대구광역시]] 체육회 총무과에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서울특별시|서울]]로 이주했다. [[2003년]]부터 잠깐잠깐씩 해설을 맡아 오다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설위원 활동을 시작했다. [[SBS TV|SBS]]를 통해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데뷔했으며, [[2010년 동계 올림픽|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는 [[SBS ESPN]]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온라인 시민기자도 겸했다. [[2014년 동계 올림픽|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도 [[SBS TV|SBS]]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 안석환 . . . . 1회 일치
         * 2019년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 2]]》 ... 노한신 역
  • 야마토 운수 . . . . 1회 일치
         [[일본]]의 택배업체.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가는 부모 고양이를 디자인한 마크로 유명하여, 쿠로네코 택배(クロネコ宅配)라고도 불린다. 1919년에 창립되어 2019년이면 역사가 100년이 되는 장수 기업.
  • 영덕군 . . . . 1회 일치
         원래 일제강점기 말기에 [[동해선]]([[동해중부선]]) 계획이 있었고 노반까지 남아있을 정도였으나 해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 결국 70년이 넘는 세월을 걸려서 [[동해선]]이 개통되어 영덕군 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KTX]]가 정차하는 [[포항역]]을 출발해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에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영해역]]을 지나 [[강원도]] [[삼척시]]의 [[삼척역]]까지의 공사가 진행중인데 영덕역 북쪽 구간이 완공되면 [[부산]]부터 영덕을 지나 [[강릉시]]까지 동해선 철도가 쭉 이어질 예정이다. 남쪽으로도 [[모량역]]부터 [[신경주역]]을 지나 [[태화강역]]까지 이어져서 최종적으로는 동해선의 실질적인 종점인 [[부전역(동해선)|부전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개량중이다. 2018년 2월 기준으로는 중간 일부 구간들이 미완성이다. 동해선 외에 김천에서 의성을 거쳐 영덕을 이어주는 [[경북내륙선]]이 장기계획으로 추진 중 이다.
  • 유인영 . . . . 1회 일치
         *2019년 [[문화방송|MBC]] 《[[호구의 연애]]》
  • 이기택 . . . . 1회 일치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 고문으로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가 이끌던 통합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중도층의 지지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만[[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2|#]], 기존의 30석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였고, 같은 야권의 경쟁상대인 새정치국민회의에 비해 너무나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양천구의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쟁쟁한 후보들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그나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몇 개의 의석을 건지긴 했으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김대중의 국민회의도 이때 상당히 부진했으나, 무엇보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50석으로 크게 약진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 이상화 (시인) . . . . 1회 일치
         *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81493 이상화 시인,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 데일리안 2019년 11월 30일
  • 이승엽 . . . . 1회 일치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회 의원 (2019년 ~ 현재)
  • 이현 (1983년) . . . . 1회 일치
         * [[2018년]] ~ [[2019년]]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제90,91,92,93대 가왕 - 안녕? 난 건이라고 해~, 독수리 건! <재도전>
  • 이현우 (가수) . . . . 1회 일치
         *[[동서식품]] 맥심 모카골드 ([[2019년]]) (내레이션 & fest.[[기안84]])
  • 인천광역시 . . . . 1회 일치
         ! 자치구·군 ! ! 한자 ! ! 인구 (명)<ref name=":0">2019년 2월 말 주민등록 기준</ref>! ! 세대<ref name=":0" />! ! 면적 (km<sup>2</sup>)
  • 임각수 . . . . 1회 일치
         1980년 [[7급 공무원]] 공채에 합격하였다. 이후 [[강원도청]], [[이북 5도청]],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 장우혁 . . . . 1회 일치
         * [[2019년]] [[TV조선]] 《[[연애의 맛 (텔레비전 프로그램) |연애의 맛]]》
  • 장헌식 . . . . 1회 일치
         [[1921년]] [[2월 12일]] [[조선총독부]] 사무관(朝鮮總督府 事務官)이 되고, 3월 10일 종4위(從四位)로 승급하였다. [[1921년]] [[3월 18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실(總督官房室) 행정관이 되었다. 1921년 3월 20일 칙임사무관(勅任事務官) 민정시찰관에 임명되어 4월 7일부터 6월 19일 [[평안남도]], [[평안북도]] 일대를 민정시찰하였고, [[10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는 민정시찰관으로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를 민정시찰을 다녀왔다. 이때 그는 관용 차량이 주어졌지만 거부하고 열차와 대중교통으로 시찰을 다녔다. [[1922년]] [[2월 15일]]에는 [[전라남도]]를 [[3월 5일]]부터는 [[전라북도]]를, [[7월]]에는 [[강원도]]를 시찰다닌 뒤 [[7월 22일]] 귀환하였다. [[9월 4일]]에는 [[황해도]] 수해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 장호 (1920년) . . . . 1회 일치
         10년간 여러 곳을 떠돌다가 [[1945년]]에 집으로 돌아왔고 그 직후에 [[태평양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군정기]]가 시작되자 미군정을 반대하여 곧바로 [[삼팔선]] 이북으로 월북했다. 특수 교육받고 [[강원도]] 지역으로 들어왔으며, [[남조선로동당]]이 불법화하자 입산하여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평양]]에 정착하고 《[[로동신문]]》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였다.
  • 전환규 . . . . 1회 일치
         ** 〈성대모사/강원도 사투리〉
  • 정겨운 . . . . 1회 일치
         * [[2019년]] SBS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
  • 정종철 . . . . 1회 일치
         * 2019년 《육수 없이 황금 비율 양념으로 맛낸 옥주부의 진짜 쉬운 집밥 레시피》
  • 정진영(배우) . . . . 1회 일치
         || 2019년 || [[클로즈 투 유(가제)]] || || 첫 연출작 ||
  • 주상욱 . . . . 1회 일치
         * 2019년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2]]》 - 톱스타 강민호 역 (특별출연)
  • 차오루 . . . . 1회 일치
         | 《[[리갈 하이 (2019년 드라마)|리갈 하이]]》
  • 찬미(AOA) . . . . 1회 일치
          * 네이버 V앱에서 혜정 다음 주자로 방송을 진행하였다. 첫 라이브 출연은 [[혜정]]의 10번째 방송으로, 여기서 무섭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혜정]]이 주로 미리 녹화한 걸 방송하는 반면 찬미는 전부 생방으로 진행하는데, 똑부러지는 성격답게 리뷰를 깔끔하게 진행하는 편. 보통 시장이라던가 홍대라던가 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이곳이 어떤 곳인지,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고 체험해보는 방송을 한다. 참고로 통인시장 리뷰에선 먹방도 찍었다(...). 그리고 11월 12일 방송에서는 '''~~답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가상 연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박초아|촤]]: [[마이 리틀 텔레비전/방영 목록/MLT-11~MLT-15#s-3.2|이게 지금 어디서 표절이야?!]]~~ 이후 유나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가, 2016년 8월 말부터 다시 방송을 재개했다. 다만 이번에는 라이브가 아닌 녹화편집본 방송. 강원도 여행기다.
  • 채현국 . . . . 1회 일치
         아버지 [[채기엽]](1907~1988)은 1952년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차렸고 1956년 [[흥국탄광]]을 설립했다. 채기엽은 강원도 사북탄광을 개발할 때 큰 일을 했다.
  • 최남선 . . . . 1회 일치
         [[한성부]] 출생이고 한때 [[철원군 (남)|강원도 철원]]과 [[창원시|경상남도 창원]]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대한제국]]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으나 중퇴와 복학을 반복하다가 1907년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귀국했다. 1907년 [[이광수]]와 함께 [[소년]]지를 창간했으나 [[한일 합방]] 후 일제의 압력으로 폐간당했고, 1912년 [[이광수]]의 도움으로 《붉은 저고리》, 1913년《아이들 보이》,《새별》등의 잡지을 발간하였으나 [[조선 총독부]]의 '신문지법' 명령으로 모두 강제 폐간되었다. 1914년에는 잡지 《[[청춘 (잡지)|청춘]]》을 발간했으나 1918년 [[일본]]의 압력으로 폐간당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49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 낭독하였다. [[3.1 운동]]을 사주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투옥, 1921년에 석방되었다.
  • 최성준 (법조인) . . . . 1회 일치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장인어른인 [[김용철 (1924년)|김용철]] 전 대법원장이 1973년부터 2년간 법원장으로 근무한 춘천지방법원에서 제44대 춘천지방법원장 겸 제42대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에 임명되어 "행동을 통해 원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명심보감 성심 편의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 든 반구저기(反求諸己)니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법관을 단순히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의 고급 간부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국민을 심판하는 권한만 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법관의 권한은 재판업무에만 사용하도록 목적이 특정된 만큼 취지에 맞게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취임사<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2/16/0200000000AKR20120216185000062.HTML]</ref>로 시작한 법원장을 재임하여 임기 2년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돌아와 재판 실무를 담당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2014년 4월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방송통신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법무법인 양헌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인 최기준과 법무법인 양헌에서 공동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최경준이 동생이다.
  • 최영희 (1921년) . . . . 1회 일치
         * 1950년 10월 이후 [[육군]] 보병 제1,8,15 사단장 - 8사단장 재임 중 강원도 횡성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기록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 최윤영(1986) . . . . 1회 일치
          * 산불
  • 칼렉시트 . . . . 1회 일치
          * 셜빈 피셔버(Shervin Pishevar) - 우버의 개발자이며, 하이퍼루프 원의 공동창업자. CNBC에서 "캘렉시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애국적인 일이고, 미국을 떠난 캘리포니아를 '뉴 캘리포니아'라고 부르겠다"고 주장했다.--[[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셜빈 피셔버는 예스 캘리포니아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으며, 스페인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모델로 하여 2019년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국가가 된 뒤에 다시 연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발언했다.
  • 하이큐!! . . . . 1회 일치
         작중 배경은 작가의 전작 [[궤변학파 요츠야 선배의 괴담]]처럼 [[미야기]]현이다. 미야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도 되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카라스노 고교]]가 있는 곳은 시골이다. ~~괜히 얘네들이 패스트푸드점 대신 [[만두]]를 사먹으러 가는 게 아니다~~ 카라스노 학생들이 촌사람이라는 걸 반영한 연출인지, 도쿄에 간 [[카라스노 고교]] 부원들이 눈에 보이는 철탑 마다 [[도쿄 타워]]냐고 묻거나, [[타나카 류노스케]]는 [[관동]]의 학교들을 가리켜 '시티보이 연합'(...)이라 부르거나 한다.
  • 한국의 출신지별 인물 . . . . 1회 일치
         [[분류:강원도 출신 인물]]
  • 한기웅 . . . . 1회 일치
         *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2019년, KBS2) - 피터 박 역
  • 한요한 . . . . 1회 일치
         *《EXIV》 (2019년)
  • 한현규 . . . . 1회 일치
         * 1978년 ~ 1982년 강원도청 근무
  • 현재현 . . . . 1회 일치
         현재현 회장은 1980년대 금융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에 선물•벤처투자 등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해 21세기 국가기간산업인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며 제조업 중심의 동양그룹을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인해 종금, 보험, 투신업계에 무려 약 34조 9천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동양그룹의 모든 금융계열사는 공적자금 지원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대우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약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전액 보전해주었다. 사회공헌차원에서 금융업을 제2의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해온 현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동양생명은 부실한 태평양생명을 인수 합병하여 생명보험사 구조조정에 힘을 보탰다. 2007년 한일합섬 인수 이후 현재현 회장은 레저사업을 동양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존의 골프장 사업에 리조트사업을 추가하고 강원도 삼척시와 연계한 레저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현재현 회장은 시멘트사업 중심의 그룹 제조부문을 친환경 에너지•자원 개발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현 회장은 1989년 그룹 회장 취임 당시 매출 6,000억 원의 동양그룹을 제조•금융•서비스 부문 33개 계열사에 연 매출 9조 2,211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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